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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영화와 같지 않아서

영화 괴물을 드디어 봤다. 개봉한 지 약 한 달 여 만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보고 왔던 관취8호님이 너무 좋은 영화였다고 꼭 보라고 추천해줬을 때로부터는 거의 꽉 채운 세 달이 될 무렵이기도 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대부분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꼭 보러 가야지 싶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몸과 마음의 기력이 떨어진 때라 선뜻 영화관으로 갈 엄두가 나지 않기도 했다. 초과 근무로 만들어낸 대체 휴가를 쓴 12월의 마지막 주의 하루, 쉬다보니 집 근처 영화관에는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아 드디어 괴물을 보러 갔다. ​ 영화는 크게 3부로 구성이 되어 있다. 하나의 이야기를 세 가지 인물의 시점에서 풀어나간다. 1부는 미나토(쿠로카와 소야)의 엄마인 사오리(안도 사쿠라)의 시점으로, 2부는 미나토의 담임 선생님인 호리(나가야마 에이타)의 시점으로, 3부는 미나토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영화 줄거리 자체도 여러 측면에서 곱씹어볼만한 요소가 참 많은 영화였는데, 개인적으로 영화의 구성이 인상적이었다. 영화가 가진 속성 중에서 한 인물의 시점을 중심으로 줄거리를 전개해 나가면서 관객들이 해당 인물에 이입하도록 하여여 해당 인물의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하는 것을 탁월하게 활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1부에서는 사오리의 입장에 서서 답답해지고 울분이 차오르게 되는데, 2부에서는 호리에 이입하며 억울하고 막막해지게 되고, 3부에 이르러서는 앞선 1부와 2부에서의 나의 생각이나 감정들을 한차례 의심하게 되고 비로소 진실에 한걸음 다가서는 느낌이 든다. ​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끝으로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나는 어쩐지 너무 슬퍼졌다. 해사하게 맑은 미나토와 요리(히이라기 히나타)의 모습이 여전히 현실에서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어서도 그랬지만, 우리네 삶이 영화와 같지 않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늘 부러웠던 것이 있었다. 갈등을 빚는 어떤 상황에서 각 인물의 전사 혹은 상황을 들여다보면 그게 수월하게 풀릴만한 어떤 지점이 보인다든지, 어떤 상황을 단순하게 판단해버리지 않도록 오해를 받을만한 인물의 속사정을 설명해준다든지 하는 것이 부러웠다. 현실에서는 누군가와 갈등을 빚게 되면 그 사람이 보여주지 않는 어떤 상황을 필사적으로 이해하려 해도 나는 그 사람이 될 수는 없어서 끝내 그의 속마음에 가닿지 못했고, 내가 오해를 받는 상황에서는 내 의도와 진심을 누군가가 언젠가는 알아주겠지 다독여도 그런 일은 거의 드물게나 일어났다. 삶은 영화와 같지 않아서 다양한 시각으로 조망하기 어렵고, 숨겨진 속사정은 그저 드러나지 않은 채로 남아있을 뿐이기에 갈등은 그저 더 깊어지고 오해는 더욱 짙어질 뿐인 건가 싶었다. ​ 어쩌면 삶은 영화와 같지 않아서 서로가 서로에게 괴물일 수밖에 없는 건가 싶어 마음이 아주 슬펐다.

#movie #year-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