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로서의 취미
5개월 만에 다시 요가원을 찾았다. 요가 이용권이 만료될 시점에 낮에는 사무직 일을, 저녁에는 어셔 일을 하는 투잡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물리적으로 시간이 없어서 추가로 등록하지 못했는데, 어셔 일이 끝나고 다시 원잡 라이프로 돌아간 후에도 시간대가 애매하다는 이유로 망설이다가 5개월이라는 시간이 훌쩍 간 것이었다. 요가쌤께 별다른 말을 하지 못하고 페이드아웃 되듯 그만두었던 터라 요가원을 다시 방문하게 될 때는 다소 머쓱했지만, 늘 그렇듯 활짝 웃으며 반겨주는 요가쌤 덕분에 금세 마음이 사르르 풀렸다.
그러나 몸은 그렇지 못했다. 시간을 들여서 될 듯 말 듯한 정도로 만들어두었던 고난도 아사나들은 처음 요가원에 왔을 때만큼이나 되지 않았고, 비교적 수월하게 하던 기본적인 아사나들마저 어딘가 삐걱이는 것만 같았다. 작년에 한창 요가를 열심히 수련하며 차곡차곡 쌓아올린 유연성, 가동성, 힘은 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싶어 울적했다. 요가를 그만두었다가 다시 시작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기에 ‘다시 또 차근차근 또 쌓아가면 되지’라며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못하는 나를 마주하는 지난한 과정을 또 어떻게 견디나’ 싶어 기분이 쉽사리 나아지지 않았다.
그날 3개월 동안 횟수 제한 없이 수련할 수 있는 무적권으로 요가원 이용권을 결제했다. 매일 수련하기 위해 요가원으로 향했고, 때로는 하루에 두 번씩 요가 수련을 하기도 했다. 새벽 6시 반에 수련하고 집에서 잠시 쉬다가 11시 50분에 다시 요가원에 들어서면 선생님이 ‘뭐야~ 잠깐 화장실 갔다온 거예요?’라며 장난스럽게 이야기하곤 했다. 그렇게 2주 정도 지났을까? 조금씩 기본 아사나들이 다시 몸에 익기 시작했고, 될 듯 말 듯하던 어려운 아사나들도 하나둘 말 듯에서 될 듯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전 직장동료들과 오랜만에 만난 어느 날, 각자의 근황을 나누다가 취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최근 다시 시작한 요가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얼마 전 읽은 <움직임의 계절>이라는 책 속 구절을 함께 떠올렸다.
“제가 최근에 읽은 책에서 ‘취미가 삶을 이해하는 은유로서 기능하는 것 같다’는 구절을 읽었는데요. 저에게는 요가가 삶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은유여서 좋아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거의 반년 가까이 요가를 쉬었는데요. 그러고 다시 요가를 하려니 너무 힘든 거예요. 겨우 늘려놓은 유연성과 길러둔 힘은 다 어디로 사라져 버렸나 싶고, 될 듯 말 듯했던 아사나는 처음 요가원 왔던 때처럼 다시 아예 안 되는 것도 속상하더라고요. 그래도 다시 요가원 와서 차근차근 수련하다보니 예전에 걸렸던 시간보다 조금 더 빨리 몸이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아요. 처음 머리서기할 때 한 4-5개월 정도 걸렸는데, 이번에 한 2주만에 다시 할 수 있게 되었거든요. 물론 아직 필요한 힘들을 온전히 채우지는 못해서 오래 버티고 있지는 못하는데요… 그래도 제가 이전에 쌓아온 것들이 어디 가지 않는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그게 지금 제 삶에서 큰 위안이 되고 있어요.
사실 지금 일을 쉬면서… 일을 하는 감각이 다 사라질 것만 같아서 두렵거든요. 언젠가 다시 일을 하게 되었을 때 처음에 일 시작했던 때보다 못하면 어떡하지 걱정도 되고요. 그런데 요가가 말해주었듯, 언젠가 다시 일하게 된다면 그동안 일하면서 제 안에 쌓인 경험들이나 감각들이 제가 새로운 일터에 혹은 일에 적응하는 데에 든든한 토대가 될 거라는 믿음이 생겼어요.”
그러자 다른 동료들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얘기를 들으니 저는 필라테스가 떠오르네요. 지금은 사정 상 잠시 쉬고 있지만, 회사 다닐 때 필라테스를 했던 게 도움이 엄청 되었거든요. 그중에서도 제일 도움이 되었던 것은 버티기! 필라테스 하면 버텨야 하는 동작들이 많은데, 선생님이 하나 둘 셋… 숫자 세는 게 그렇게 시간이 안 가거든요? 그래도 조금만 더 참아보자 하면서 필라테스에서 버텼던 것을 회사생활에도 적용하면서 그동안 어찌저찌 버텨낼 수 있던 것 같아요.”
“오, 저한테는 수영이 그런데! 저는 물 속에 있는 것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몸 쓰는 걸 잘 못해서 실력이 빠르게 늘지 않으니까 답답할 때도 있어서 수영하는 게 마냥 즐겁다고만 하기는 어렵거든요. 분명 나랑 같이 시작했던 사람이고, 내가 더 열심히 수업에 나오고 연습도 하는 것 같은데 그 사람이 저보다 다음 반으로 먼저 올라가는 경우들을 보면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하고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뿐이지 꾸준히 수영을 나가다보면 어느 순간 저도 다음 반으로 올라가게 되더라고요. 사실 요즘 지지부진하게만 느껴지는 지금을 돌파해 나가고 싶어서 답답하다는 감각을 느끼고 있었는데… 수영이 그랬듯 조금씩 계속해서 하다보면 언젠가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81p 물 속에서 숨을 참는 일은 슬픔에 잠겼을 때 죽지 않는 일과 나란하다. 발장구를 치며 나아가는 일은 처음 시작하는 일에서 애쓰는 모습과 나란하다. 발끝과 허리를 세우고 춤을 추는 일은 정확한 고통을 사랑하는 일과 나란하다. 한 코 한 코 마무리 짓는 성실함은 일상을 잘 살고 싶은 마음과 나란하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취미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삶에 대한 은유가 된다.
-초여름, 움직임의 계절(도래)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취미에 대해, 각자의 삶에 대해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