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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진이 부러워도 되나

얼마 전, 본진의 차기작이 떴다. 보일듯 말듯한 캐스트 필름으로 캐스팅을 유추하게 하다가 기획사 계정에서 캐스팅을 공개하는 최근의 대다수 기획사들의 방식과는 달리, 아주 시원하게 얼굴이 또렷하게 보이는 뮤직비디오 형식으로 캐스트를 공개했다. 영상에서 본진을 보자마자 진짜 육성으로 소리를 질렀다. 집이었으니 망정이지… 지금 하고 있는 작품에서 다른 배우들보다 1주일 정도 전에 막공을 하는 것으로 보아 차기작이 있을 것 같다고 막연히 생각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급작스럽고 신선한 방식으로 차기작을 알게 될 줄이야. 게다가 차기작이 2년 전에 보면서 ‘이거 본진이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작품이라 더더욱 기뻤다. 나름 본진 덕질 3년 차에 접어들면서 다소 Chill 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더욱 ^^7 해진 건가 싶을 정도로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 차기작 뜰때마다 이렇게 도파민이 폭발해서야…

영상 속 청량한 본진의 모습과 이로 인해 만들어진 짜릿한 도파민으로 뜨겁게 벌렁이던 마음이 차차 진정되는가 싶더니 갑자기 밑도끝도 없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마음의 낙차가 당황스럽기만 했다. 나 분명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순수한 행복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나는 부러웠던 거다. 본진이 차근차근 커리어를 쌓아가는 것이.

분야도 상황도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는 게 말이나 되나 싶어서, 게다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누구보다 좋아하고 응원하는 본진을 부러워하는 게 진짜 말이 되는 건가 싶어서 더더욱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차근히 생각해보니 내가 본진을 좋아하고 응원하는 여러 가지 이유 중에 나와 그를 약간은 동일시했기 때문도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나와 본진은 동갑이다. 그는 원래 뮤지컬과는 전혀 관련 없는 전공을 하다가 노래에 대한 열망을 놓지 못해서 뒤늦게 편입을 하여 뮤지컬 쪽으로 진입했고, 나 역시 전공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일을 하고 있다기보다 마음이 기우는 소셜 섹터 쪽으로 대외활동과 인턴을 하면서 발을 들였다. 각자의 분야에서 본격적으로 일을 하기 시작한 것도 나는 2018년 첫 회사에 입사하면서부터고, 나의 본진은 2019년 뮤지컬로 데뷔하면서부터다. 써놓고 보니 뭐 그리 대단한 공통점이냐 싶지만, 처음 사랑에 빠질 땐 이런 작은 공통점들도 운명적으로 느껴지는 것 아니겠나…

어쨌든 나는 그동안 그에게 느끼는 동질감을 기반으로 그를 응원하면서 동시에 그를 통해 영감과 자극을 얻어왔다. 그런데 작년에 내가 첫 퇴사를 하면서 그 동질감에 조금씩 균열이 갔다. 나 스스로 선택한 퇴사였지만 사실 뚜렷하게 이후에 무언가를 해야겠다거나 하고 싶다거나 한 것이 없었다. 그저 쉬고 싶었던 것 같은데,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잘 쉴 수 있었을까. 한동안은 불안과 두려움에 제대로 쉴 수조차 없었다. 조금씩 회복이 되고 나서는 나름대로 새로운 도전과 모험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본진의 말과 행보는 내게 힘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올 6월까지 완주하기로 했던 새로운 도전 중 하나가 여러 가지 외부 상황으로 예기치 못하게 중단되면서 또다시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런 나와 달리 본진은 지금껏 차근차근 커리어를 쌓아오다가 작년부터 커리어의 상승세를 탄 것처럼 보였다. 작년 첫 뮤지컬 대극장 주연으로 발탁되어 회차가 거듭될수록 노래도 연기도 깊어지더니, 올해는 무대에서 더 자주 모습을 보이겠다는 인터뷰에서의 말처럼 벌써 2개의 작품의 주연으로 필모를 쌓고 있다. 하반기에도 개인적으로 그가 와주길 기대하는 작품들이 있는지라 어쩌면 그가 올 한 해 풀로 일하게 될 수도 있어서 올 한 해 그가 늘려갈 수 있는 필모의 가능성은 활짝 열려있다.

그가 부럽다. 너무나도 부럽다. 무대 위 반짝이는 그를 보고 나올 때면 삶을 의미 없이 흘려보내는 것만 같은, 무언가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느낌이 아니라 애쓰는 족족 파스스 흩어지는 것만 같은 지금의 내가 더욱 선명하게 느껴진다. 마치 넷플릭스로 한 편의 영화를 즐겁게 보고 난 후 어두워진 화면 위로 내 얼굴이 비춰져 보이는 것처럼.

그런 나를 보며 다시금 깨닫는다. 나 역시 내 삶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시간을 차근히 쌓아가고 싶구나. 어쩌면 지난 7년간 일해왔던 것처럼 전력을 다해서. 그런데 어디에 무엇을 어떻게 쌓아가고 싶은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상태구나. 여전히 답을 내지 못한 문제들 앞에 불안하고 초조하게 서있을 뿐이지만, 내가 지금 어디에 서있는 지를 알게 된 것만으로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이 막막함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다보면 내가 어디로 어떻게 나아갈지 마음을 다잡을 수 있을까?

덧. 5월 12일, 본진이 드라마에 나왔다. 반갑고 기쁘고 좋은 마음보다 혼란한 마음이 더 먼저 들었어서, 사실 여전히 그 마음이 나를 더 압도하고 있어서 참으로 소란한 밤을 보내고 있다…

#renavigate #year-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