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ehographer

헤어질 결심이 필요해졌다

첫사랑과도 같은 회사와의 이별을 준비하며

2월의 어느 날, 문득 정말 마음이 다했구나를 느꼈다. 휴직이나 퇴사를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를 읽으면서 으레 등장하는 '출근길에 경미한 교통사고가 나서 어쩔 수 없이 몇 주라도 쉬게 되는 상황이 되면 좋겠다'라거나 '출근길에 혹은 회사에서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줄줄 흘렀다'하는 장면은 그저 클리셰라고 생각했다. 오늘 아침 출근하면서부터 정말 문자 그대로 가슴이 너무 답답해서 숨 쉬는 것도 갑갑하다는 느낌이 들었고, 회사 동료들이 스몰톡하는 내용을 듣고 있는 것도 대표님이 업무 처리하시겠다고 사무실을 분주히 다니시는 것도 보고 듣고 있기가 괴로워 이어폰을 꽂았는데 귀에 들려오는 'Revolting Children'을 듣고 정말 눈물이 주룩 흘러 파티션에 가려지게 고개를 아래로 파묻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지금 이곳에서 이 일을 계속해서 해 나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일은 내게 어떤 의미일까?

이런 고민들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2년 전 연봉 협상 때 처음으로 쭈뼛거리며 내가 회사에서 해내고 있는 과업에 비해 보상을 적정하게 받고 있지 않은 것 같다고 겨우 이야기를 꺼냈을 때부터였을까? 아니면 작년 초 연봉 협상 때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깎여버린 연봉을 받아 들고 허탈해졌을 때부터였을까? 올 초 연봉 인상률이 미미한 데다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고는 결국은 팀장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앉혔지만 그럼에도 신입 직원이 오면 함께 일하면서 조직에 적응도 시키면 좋겠다는 등 여러 가지 역할과 과업을 얹혀줄 때부터였을까?

예전에는 일이 바빠지면 흩어지던 고민들이 나도 모르는 새 켜켜이 쌓여 엄청난 무게로 나를 짓누르는 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도저히 의욕이 생기지도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았다. 이제는 더 이상 피할 수가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려 한다. 주어진 일을 잘 해내고 싶다는 생각으로 주어진 일을 하기에 바빠 돌보지 못했던 내 마음 속에 솟아난 잡초 같은 질문들을 이제는 하나씩 들여다봐야지. 지금껏 이곳에서 쌓아온 시간들을 다시 되짚어보고 정리해봐야지. 그렇게 헤어질 결심을 해나가야지.

#renavigate #year-2024